심리학 용어 중에 ‘고슴도치의 딜레마’라는 말이 있다. 고슴도치의 딜레마는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쓴 고슴도치 우화에서 유래했다. 몹시 추운 어느 겨울밤, 한 쌍의 고슴도치는 체온을 나누기 위해 서로 가까이 다가간다. 하지만 날카로운 가시가 피부를 찌르는 고통 때문에 다시 멀어진다. 결국 고슴도치는 서로의 적절한 거리를 찾지 못한 채 얼어 죽고 만다. 이는 인간관계에서 타인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함을 말해준다. 아이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부모와 거리 두는 법을 배워간다. 특히 3세 이전까지는 애착 형성에 중요한 시기이기에 신뢰를 바탕으로 거리두기를 해 나갈 필요가 있다.
‘신뢰’는 3살 이전 아이와 거리두기를 할 때 가장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 신뢰는 ‘믿음’과 ‘약속’을 통해 형성된다. 먼저 믿음은 부모가 눈앞에 보이지 않아도 계속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하는 대상 영속성을 통해 생겨난다. 까꿍 놀이는 대상 영속성 발달에 효과적이다. 부모가 까꿍 신호에 맞춰 눈앞에서 사라졌다 다시 나타났다를 반복하면 아이는 부모가 눈앞에서 사라져도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경험을 통해 아이는 생후 7개월부터 경험하는 분리불안을 극복하고, 부모와 분리되는 개별화 과정을 원만하게 거칠 수 있다.
약속은 말을 지킨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말을 행동으로 옮겨 언행을 일치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무엇보다 3세 이전까지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아이와 사소한 약속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잠시 화장실을 갈 때도 ‘지금 잠깐 화장실 가는 거야’, 편의점에 무언가를 사러 갈 때도 ‘5분 뒤에 다시 돌아와’라고 말해준다. 이러한 경험이 축적되면 아이는 부모와 떨어져도 불안해하지 않고 기다리는 법을 배우게 된다. 이때 아이가 심하게 운다고 해서 ‘너 그러면 그냥 갈 거야’, ‘계속 울면 안 와’와 같이 일관성 없는 태도를 보이면 분리 불안은 더 심해진다. 이별을 암시하는 ‘엄마 없이도 잘할 수 있지?’라는 말도 아이를 더 불안하게 만든다. 이보다는 의연하게 대처하면서 일관된 태도를 보이는 것이 좋다.
거리두기는 아이의 소유물에도 적용된다. 한 번쯤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아이가 음식을 먹다가 자리를 비운 사이 음식을 다 먹었다고 판단해 남은 것을 먹거나 버릴 때가 있다. 아이는 음식이 사라진 것을 알고 자지러지게 큰 소리로 운다. 부모가 자신의 장난감을 함부로 만지거나 다른 형제에게 빌려준 경우에도 속상한 마음을 표현할 때가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이가 화가 난 이유는 자신의 경계를 침해당했기 때문이다. 아이는 두 돌 이후 소유 개념이 생기기 시작해 차츰 ‘내 것’과 ‘남의 것’을 구별할 줄 안다. 이 시기에 아이의 소유물을 마음대로 사용하면 아이는 ‘빼앗긴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아이의 소유물을 인정하고 존중해줘야 한다. 예컨대, ‘밥 다 먹은 거야? 남은 거 아빠 먹어도 돼?’, ‘이거 이제 안 갖고 노는 거지? 그럼 동생 빌려줘도 돼?’, ‘과자 그만 먹을 거야? 그럼 버려도 되는 거지?’라며 경계를 넘을 땐 아이에게 허락을 받는다.
3세까지는 아이가 부모와의 공생적 관계에서 서서히 벗어나는 시기다. 이때 아이는 부모에게 의존하고 싶은 욕구와 자율적인 존재가 되고 싶은 욕구를 동시에 가진다. 이 갈등 속에서 아이는 부모와의 적당한 거리를 발견하고, 부모와 자신은 독립된 존재임을 깨닫는다. 이를 시작으로 아이는 앞으로도 지속적인 독립의 과정을 거쳐 성장해 나갈 것이다.
*칼럼니스트 정효진은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에서 말하기 강의를 하고 있다. 서로 소통하며 함께 성장하는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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